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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뜰 수 밖에 없는 나라 '방글라데시'를 소개합니다.

by 정보사이트 P 2024. 6.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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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오랜만에 방문한 방글라데시 다카와 다카 클럽을 소개합니다. 방글라데시와는 20여년전부터 인연을 맺어서 현재까지 종종 방문을 하면서 인연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할 말이 정말 많습니다. 20여년의 변화를 한 몸에 느낄 수 있었던 저로서는 방글라데시가 슬픔으로 다가오면서 기쁨으로도 다가오는 복잡한 심경의 장소입니다. 요즘 TV 프로그램이 여행 전문 유튜버와의 콜라보가 많은데 여자 여행 유튜버가 요근래에 다녀오는 것을 TV를 통해 잠시 본 적이 있었습니다. 다행이다 싶었습니다. 지금 방문을 했으니 망정이지 20년 전이었으면 아마도 하루를 못 버티고 돌아 갔을것입니다. 제가 경험한 것을 토대로 하는 말이니 과장이 섞입니다. 네 맘대로.... 하하하

 

방글라데시는 어떤 나라일까요?

일단 구글맵을 통해서 위치 파악 들어갑니다. 인도 옆에 꼭 붙어 있습니다. 인도가 가만 들여다 보면 정말 거대한 나라입니다. 잠시 길을 벗어나서 인도에 들려 볼게요. 방글라데시 위쪽과 오른쪽을 보시면 여기도 인도땅입니다. 남서쪽 귀퉁이에 그 말도 많은 로힝야족 탄압이 문제가 되고 있는 미얀마입니다. 인도가 방글라데시를 감싸고 있는 형국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방글라데시 구글맵 사진

재미 있는 사실이 있습니다. 방글라데시 동쪽의 인도 땅에는 인도인이 살기는 하는데 인도인이 아닌 인도인들이 살고 있습니다. 무슨 말일까요? 오랜 전에는 미얀마인 또는 부탄인, 중국인 들이 살고 있던 지역인데 인도로 국경선이 그어지면서 여전히 이 지역에는 동아시아인과 얼굴이 거의 똑같은 인종이 살고 있습니다.

 

[그림3. 방글라데시 Hillside 부족]

위 사진은 방글라데시 사람들이고 아래 사진은 미얀마와의 국경지대에 살고 있는 방글라데시 커플 사진입니다. 얼굴 모양이 많이 다르지요. 2~3년 전에는 국제 뉴스에 자주 나오던 로힝야족이 미얀마의 방글라데시 국경 지대에 많이 사는 것처럼 미얀마 종족이 방글라데시의 미얀마 국경 인접 지역에서 살고 있는 까닭에 이런 일이 생기게 된 것입니다. 방글라데시에서 제 1의 도시는 수도인 다카시이며, 제 2의 도시는 치타공입니다. 다카에서 남서 방향으로 약 216km 정도 떨어져 있습니다. 2년여 전에 치타공에서 챠토그램이라는 명칭으로 이름으로 변경했습니다. 치타공이 영국식 식민지시대의 영어 발음이라서 원주민인 뱅갈족 언어로 변경한 것이라고 합니다. 제 느낌에도 치타공보다는 챠토그램이 더 나은 것 같습니다. 

방글라데시와 파키스탄의 원한의 역사

방글라데시 업무 중에 방글라데시 고위직 손님을 한국에서 3일간 모신 적이 있었습니다. 먼 곳에서 오셨으니 고향 음식이 그리우실 것 같아서 같은 인도 계통이라 생각하고 인도식 식당에 모셨습니다. 잠시 다른 업무가 생겨서 먼저 인도 식당에 모셔 놓고 저는 약 15분 정도 늦게 도착을 했습니다. 그런데 식당에 들어서자 마자 저를 보시더니 화를 그렇게 내시는 게 아니겠습니까? 

순간 얼음같이 얼어 붙어 버렸습니다. 이 상황이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왜? 왜? 왜? 신경써서 고향 음식 드시라고 열심히 찾아서 인도식당으로 모셨는데 왜 저를 보고 화를 내시는 겁니까? 옆에 있던 수행원은 저를 좀 이해를 했는지 어찌할 바를 몰라 하면서 쩔쩔매는 모습으로 서 있었습니다. 잠시 뒤, 수행원이 저를 자리로 안내한 순간부터 저는 방글라데시 역사에 대해 강의를 거의 한시간 동안 들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나서야 왜 이 분이 제게 그렇게 화를 내셨는 지를 알게 되었지만요. 간단합니다. 식당 주인이 인도 사람이 아니라 파키스탄인이었고, 이를 알게 된 그 분께서 대노를 하시면서 화를 내었고, 파키스탄 주인은 자리를 비우고 식당에서 자리를 피한 상황이었는데 아 글쎄! 방글라데시와 파카스탄이 은원으로 똘똘 뭉쳐진 사이가 아니겠습니까? 한국과 일본하고 충분히 견주고도 남을 만큼의 피맺힌 역사를 갖고 있었습니다. 아쉽게도 당하는 쪽은 저희 한구과 방글라데시였구요. 자세한 두 나라의 역사 관계는 위키피디아나 인터넷 자료를 뒤지시면 아주 자세히 잘 나와 있습니다. 방글라데시 독립 활동으로도 검색을 해 보시면 눈을 돌릴 수 밖에 없는 사진들이 잔뜩 나올 것입니다. 그 분의 큰아버님도 파키스탄의 군인들에게 무참하게 살해를 당하셨는데 그 광경을 이분이 바로 앞에서 목격을 하셨다고 하더라구요. 얼마나 놀랐는지. 업무상 그냥 고객으로만 알고 최선을 다하고자 했는데 이렇게 역사 공부도 하게 될 줄이야. 하하하. 우리는 세계 2차 대전 종식과 함께 1945년도에 독립을 하였지만 방글라데시는 파키스탄으로부터 1971년도에 독립을 하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많은 방글라데시 사람들이 학살을 당하였습니다. 300만명이 파키스탄 군인으로부터 학살을 당한 것으로 조사되었습니다. 

 

왜 방글라데시가 뜰 수 밖에 없을까요?

20년전과 비교하면 지금 2024년의 방글라데시는 한국과 비교한다 치면 1970년대 말에서 1980년대 중반 정도의 발전 정도를 갖고 있습니다. 세계 최빈국에서 이 정도로 올라 선 것은 우리가 한강의 기적을 말하지만 방글라는 한강의 기적보다 더한 기적을 이룬거나 다름없습니다. 가장 큰 변화는 길거리 대로변에 노숙자나 반나체의 어린아이가 거의 보이지 않는 다는 점입니다. 물론 아직도 길거리에서 노숙하는 이들은 좀 있습니다. 하지만 20년 전과 비교하면 거의 없는 것이나 다름 없을 정도로 자주 눈에 띄이지 않습니다. 최빈국 지위에서 개발도상국 지위로 신분 상승하였다고 고위 공무원 분들이 제게 자랑하던 때가 있었는데 그게 한두해 전이었습니다. 지금은 개방도상국으로 진입을 한 것처럼 도시의 발전이 정말 하루게 다르게 변하고 있습니다. 수도인 다카에는 도시철도가 1호선부터 6호선까지 예정이 되어 있습니다. 6호선 일부 구간은 이미 개통을 하여 대중에게 양질의 교통서비스를 제공하기 시작했구요. 인구의 수가 1억 6천만명이고 젊은층의 구성 비율이 매우 높아 양질의 노동력도 풍부합니다. 이미 한국에서도 이 점을 눈여겨 보고 많은 봉제업 공장이 오랜전부터 이 곳에서 터를 잡고 사업을 해 왔습니다. 한국도 방글라데시 발전에 한 몫을 담당해 왔던 것입니다. 미국의 중국 견제 정책과 베트남에서의 인건비 상승등으로 산업기지가 서진을 이미 하여서 방글라데시의 인력 시장에 많은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으며, 많은 대기업들이 공장을 세우고 있습니다. 한국 기업의 좋은 예로서 한국의 의류 사업 리더사인 영원무역이 바로 그 회사입니다. 방글라데시 남동부에 위치한 차코그램 공항에 Land on 할 때 보면 활주로 옆에 큰 창고들이 있고 봉제업에 쓰이는 엄청난 양의 섬유 더미들이 보이는데 그 중앙의 한 창고가 바로 영원무역 소유의 창고입니다. 앞으로는 더 많은 해외의 기업들이 방글라데시로 생산기지를 옮겨 올 것을 기대하고 있으며, 이는 방글라데시 발전에 큰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30년정도 후에는 한국은 쪼그라 들어 있고, 방글라데시는 무역 10대국의 반열에 있을 지 누가 알겠습니까? 충분히 예견 가능한 일입니다. 슬프지만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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